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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역사를 상기 시키는 "구시다 신사"

남십자성 2016. 3. 30. 21:37

일본여행을 하면서 친절하고 예절바른 일본인들을 보면 감탄을 하다가도 한일간의 불편한 역사의 현장을

 만나고 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접하면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 금할길 없다

오호리를 지나 나가스카와바타에서 내려 케널시티로 가는 길목에 후쿠오카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접근성이나 유명세 때문에 많이 찿는다는 구시다 신사를 만나게 된다

구시다신사는 헤이안시대인 757년에 세워진 신사로 불로장생과 상업번성의 신을 모신 신사다

구시다 신사가 유명한것은 700년의 역사를 가진 후쿠오카 최대의 마츠리(축제 ) "기온야마가사"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오이야마"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구시다 신사가 우리에게는 뼈아픈 역사를 상기 시키는 장소가 된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침전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낭인 :토오가스아키"가

1908년 이곳 구시다에 그칼을 기증했다고 한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그칼 "히젠토"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그 자객은 명성황후의 마지막 그 눈빛을 잊을 수 가없어 13년간 고통과 후회의 세월을 보내다가

 그녀를 형상화한 관음상과 함께 그 칼 히젠토를 이 신사에 바쳤다고 한다

그 칼의 칼집에는 을미사변 (조선 명성황후 살해사건)의 작전 코드명인 "여우사냥"을 기념하며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 왕후를 이 칼 히젠토로 베었다" 하고 적은 문서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칼은 유료 공개이고 공개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다

이 신사는 명성황후를 살해한 그 자객까지도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라니

 한국인으로 씁쓸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되었던 칼

 히젠토를 반환하라는 "히젠토 환수위원회"가 출범했었다

문화재 환수위원회는 을미사변으로 지난 100년 이상 발생한 양국간의 비극적인 업보를 상징하는

 이 칼을 파기하거나 한국측으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수위측은 히젠토의 존재만으로도 한일간 민족감정상 큰 갈등을 부를만한 흉물이고 충돌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참회하는 차원에서 이칼을 한국에 인도하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구시다측의 대답은 이칼은 세상에 다시 나와서는 안될 물건이고 참회의 뜻으로 구시다 신사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인데 조선의 국모를 벤 흉기를 기념품처름 소장하고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은 곳이다

이런 기분과는 반대로 다자이후 근처의 유적지들을 돌아보면 한국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문화유적지들도 많이 존재한다 이처름 큐슈에는 양국이 서로 영향을 받은 역사들이 살아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