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서 마주보이는 차이나타운과 택사스촌 골목을
가로 지르는 길로 접어들면 곧 초량 이바구길이다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근 현대사의 질곡을 담은 부산 초량의 산복도로 길을 말한다
부산 동구의 역사와 테마를 이은 "초량 이바구길"은 2013년 개통 되었으며 동구의 삶과 흔적을 찾아 떠나는
산복도로 골목길 이야기의 공간시간 여행길이다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 구 백제병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백제병원은 1927년 서양식 벽돌 건물로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당시 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지역의 중요한 의료기관 이었다
1932년 병원이 문을 닫은 후에는 중국요리집인 봉래각으로 1942년에는 일본 아카즈키 부대의
장교 숙소로 해방 후에는 부산치안사령부와 중화민국 임시대사관 등으로 사용하였다
1953년에는 예식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일반상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개화기 근대식 건물의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어 근대시기 병원건축의 공간
구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되어있다
이바구길의 이바구는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담장갤러리로 이어진다
고단한 삶과 시원한 전망이 얽혀있는 곳 부산이 부산일 수 있고 삶이 삶일 수 있는 이게 사는거다
이런게 사람이구나 라는걸 살면서 차츰 알게되는 산복도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꼬부라지고 꺽어지고 휘어져서 편한길로만 갈 수 없고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없으며 헉헉대며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다가 더디어 숨을 고르게 되는것이 우리의 삶과 많이도 닮은 이바구길이다
초량초등학교와 담부랑을 마주하고 있는 초량교회는
1892년 11월 미국북장로회 선교사 월리엄 베어드 가
영서현에 사택을 건축하고 사랑방을 예배처소로 개방하여
선교함으로서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로 태동하게 되었다
교회명은 영서현교회 ~영주동교회~ 초량3.1교회 ~ 초량교회로 변천
발전되어 왔으며 임시정부시절에 이승만대통령이 예배를 보았던 교회라고 한다
산동네는 이렇게 도시 소시민들이 오랫동안 천천히 조금씩
삶의 흔적을 남겨온 우연과 역설의 공간이다
" 일출봉에 해뜨거던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던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않고 빨래소리 물래 소리에 눈물 흘렸네
시인 김민부 전망대에서 그의 시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한다
초량 이바구 동내의 유명인들을 찾아보니 예능인으로는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이 있고
시인으로는 김민부에 유치환 정치인으로는 허정 박순천 등이있고
청십자 의사인 장기려박사 이곳의 출신이거나 동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깔막길을 숨가뿌게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보면 168계단길을 태워주는 모노레일을 만난다
동내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것이라 하는데 일반 관광객들도 탈 수 있다 "무료"
사람하나 겨우 빠져나가는 골목길 산복도로 계단길을 따라 걸으며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이바구길은 까꼬막의 연속이다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 (당산할배와 당산할매) 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등을 기원하는 지역공동체적 의례이다
동구 당산제는 극심한 사회변화 속에서도 보존되어 오는 우리문화유산으로서
일제시대 민족말살정책의 일한으로서 박해도 많이 받았고 새마을낡은 미개한
문화라 하여 배척당하는 속에서도 운동 현재까지 보존되어 내려오고있다
경남여고 교장을 두차례지내고 이곳 동구에서 생을 마감한 청마 유치한선생을 기리며
부산항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명소 이곳에 편지를 넣으면
한 일년쯤 지나야 받아볼 수 있다는 청마 유치한의 느린우체통이 있다
* 김중위누님의 모교인 경남여고를 내려다 보자니 태안에 사는 영자누님 소식이 궁금코 보고싶은 생각이난다
그날 우리가 열대의 전장으로 떠났던 부산항 제3부두 ~
오늘날 그부두에 ~ 갈 길을 잃고 정박해 있는 하얀 저 여객선은
오사카로 가는 배냐 후쿠오카로 가는 배냐 시모노새키 아니면 대마도 (?) 가는 배냐 ~~
산과 바다가 조화로운 초량 이바구길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역사가 있는 추억의 여행길이다
최진사: 이야기 그리고 이바구 ㅋ 어떤 차이가 있는거죠? 아직도 이런곳이 보존되고 있다니 가보고 싶어지는곳입니다. 168 모노레일, 제3부두가 있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군요. -[05/06-05:07]-
김 영: 구수한 해설과 초량 마을 전경 잘 봅니다...우리들의 가난하고 호구지책에 메달린 시절이었지만 인정이 있었고,이웃의 정이 있었던 시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웃끼리 잘 살거나 못 살아도 음식도 나눠 먹던 시절 이었다는 생각입니다...나이가 많으면 형남이요, 적으면 아우님으로 가난했지만 이웃을 생각해주는 정이 있는 시절이었다고 생각도 합니다...옛날 생각을 해보며...항상 건강하시고 사모님과 함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05/06-06:13]-
류지현: 인기 해설사 한분을 모시고 초량이바구길 한바퀴 돌아본 기분입니다 구경 한번 잘 했습니다 박전우님! -[05/06-09:09]-
박용환: 쫌~! 장사도 안되고 더군다나 우한폐렴으로 방구석으로 내몰린지도 어언 90여일이 다 되가는싯점에 이제는 정신까정 왔다갔다 ..ㅎㅎ 방에 누워서 손폰으로 멘날 컴 대용으로 디려다보니 눈까정 침침해지내요~~ㅎ 초량동에 이런 시설들이 안즉 계시다는대 놀랍습니다..인생 마무리 단계쯤에는 이곳을 꼭 다녀와야할 요량으로 치부해놓습니다..그나저나 박사령관님도 요즘 시간이 널널 하시겠군요..곧 떠나겠지요..별일 없다면요..이딴식으로 1년 2년 간다면 모두다 힘들겜니다..늘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참전 전우님들 모두가.. -[05/0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