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生浦 倭城
동해바다 울산 진하 해수욕장의 명선교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명선도와 서생왜성 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명선교는 서생면 진하와 온산읍 강양을 이어주는 화합과 결속의 다리다
그 명선다리와 아름답게 어울리는 섬 명선도는 썰물때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더우기 명선교와 명선도는 일출사진의 명소로 사진쟁이들이 일출을 담아보기를 원하는 그런 장소다
베트벳의 사진꾼 전재경 선배님도 언젠가 명선도의 일출을 담아보기 위해 먼길 마다않고 찿아왔다
안타깝게도 오메가를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간 적이 있는 그런 곳이다
서생포 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 (선조 26년) 5월부터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16세기 말의 일본식 평산성이다
회야강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山頂에 내성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2단 3단의 부각을 두었으며 산 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을 배치 하면서
성벽 밖으로는 2중 3중으로 호 를 둘렀다
성곽의 전체 면적이 4만6천평에 이르고 호 를 제외한 성 외각부의 길이가 약 2.5km 동서로 약 870m
남북으로는 370m에 달해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
성벽은 외성의 경우 바같쪽에만 돌로 쌓은 내탁식 으로 하고 내성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은
협축식으로 축조 하였으며 기울기는 지면에서 60도 내외이다
현재 산정에는 높이 약 5m의 天守臺가 남아 있으며 성의 내 외부에는 다수의 우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임진왜란중 1594년 (선조27년) 우리측에서 사명대사 등이 나서서 4차례나 울산 서생성에 찿아가 기요마사에게
휴전을 제의 했으나 너무 무리한것을 요구하였다 그중 하나가 조선 8도중 남쪽 4개도를 양도 하라는 것이다
이에 조선과 명나라의 마귀제독과 편갈송 장군이 이끄는 조 명 연합군은 1597년 음력 12월 23일
가토기요마사 군사 15.000명이 지키는 서생성을 공격했다 성이 완전히 포위된 기요마사 군대는
말을 죽여 식량을 삼고 그 피를 마실 정도로 고충을 받았지만 왜의 구원병이 조 명 연합군의
방위선을 뚫음으로서 연합군은 끝내 울산왜성을 함락 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기요마사는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죽음으로 울산왜성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때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가 철수하는것을 본 울산 사람들이 "쾌재라 청정이가 나가네" 하고 환호를
하면서 노래를 했는데 이것이 경상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어 지금의 경상도민요 "쾌지나 칭칭 나네" 가 되었다
전후 마귀제독과 편갈송 장군은 울산의 자연환경에 반해 울산에 정착해 살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마씨와 편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서는 서생성에 "창포당" 이라는 사당을 지어 임진왜란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게 했는데 이후 일제 강점기에 헐리게 되었다는거다
임란중에 많은 울산지역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 갔었고 최근에 西生이라는 성씨를 가진 일본인 들이 자신의
뿌리를 찿아 서생에 나타나 화재가 되기도 했는데 이들의 선조는 서생이 고향이라고 했다
서생성은 이와같이 우리의 슬픈역사가 숨겨져 있는 성이다
안흥종: 왜성의 모습을 잘 드러낸 흔적이 보입니다.
가등청정이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조선의 기와를 사용했으며
젊은 남여와 도공을 잡아가서 사가현 아리타, 이마리요가 지금 세계적인 명품이 되었습니다.
천하를 판가름하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이사다 편에선 소서행장을 참수를 당했고
동군 도쿠가와 편에 선 가등청정은 장수를 누리며 구마모토성에서 노후를 편히 보낸자로 조선참략의 원흉들이다.
재영님은 동행 대상자가 많아서 누구랑 간 것인지 헷갈리나보지... -[03/30-08:58]-
최진사: 백동기(남봉조)님께서 서생면에 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최진사는 동해남부선을 자주 탔었지만 서생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명선도 풍경이 아름답고 곳곳에 남은 성벽의 자취가 선조들의 땀을 말해 주는것 같습니다.
남녘의 꽃소식을 전해주는 박재영님 화이팅! -[03/30-09:33]-
김병장: 20여년전 울산,울주 전역 도로망 지적고시 조사 참여차 태화강 상류 서생면에 같을때..."우형우 좌동영"이란 말이 기억이 났고...울산 비행장이 초라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박재영 전우님의 해박한 지난 역사를 읽으며 감탄하고 있습니다...맑고 시원한 태화강변에 발 담그고 음료수 마시며, 쉬던 생각도 납니다...ㅎ...감사드리며,항상 건강하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시길 빕니다. -[03/30-09:40]-
백동기: 이곳에서 20리 가량 떨어진 농촌 마을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1차례 봄 소풍을 이곳에 온 기억이 있습니다.이곳 성안에서 보물 찾기도 하였고 산토끼도 본 기억이 새롭고 제일 아래 사진의 동네가 진하 해수욕장인데 그때는 너무나 경치가 수려 했었고 또 강 하구에는 맛있는 크다란 석화굴과 꼬시라기 뱀장어 실같은 파래가 유명하였는데 요즘에는 오염과 난개발로 러브하우스가 무려 50여동 들어서서 그 아름답던 고장을 버려 놓았다는 이곳 출향분들의 고향 소식입니다.이 왜성은 일본군이 물러간 이후 우리 군대가 1백 여년 이상 주둔하였다 하여 왜성이 아니지 않느냐? 하기도 하였답니다.박재영전우님의 상세한 소개에 찬사를 보냅니다.그리고 일본 왜성의 축성 방법과 조선성의 축성 방법 차이는 자세히 보면 왜성은 돌을 다이야몬드 형태 즉 각이 위쪽으로 올라가겠끔 쌓고 조선성은 수평으로 쌓는것과 성벽 모서리 처리가 조선성은 수직형인데 왜성은 대각선으로 이루어 지겠끔 하였는것 같습니다. -[03/30-11:32]-
홍종만: 조그마한 史實도 밝히려는, 박재영戰友님의 노력이 돋보입니다...1593년 蔚山에 倭城을 쌓아,長期駐屯을 하려했던 日本侵略軍의 痕蹟을 보여주네요, 日本 九州에 있는 熊本城의 모습을 담은, 慶尙南道 蔚山 西生面의 성곽흔적을 잘보았습니다... -[03/31-06:47]-
홍 진흠: 박전우님! '쾌지나 칭칭나네' 는 홍하사가 김상국, 김용만씨의 버전으로 조금 루를 수 있어요. ㅋㅋ -[04/01-00:13]-